한약은 간에 나쁘다는 말, 어디서 왔을까
"한약 먹으면 간 나빠지지 않나요?"
진료실에서 가장 자주 듣는 질문입니다. 저는 이 질문을 반기는 편입니다. 걱정하신다는 것은 그만큼 자기 몸을 아끼신다는 뜻이니까요. 다만 이 질문에 "아니요, 괜찮습니다"라고만 답하는 것은 성의 없는 대답이라고 생각합니다.
정확히 말씀드리면 이렇습니다. 간에 부담을 주는 것은 '한약'이라는 범주가 아니라, 특정 물질이 특정 농도로 들어올 때입니다.
무엇이 간에 부담을 주는가
간은 몸에 들어온 물질을 처리하는 기관입니다. 그래서 처리해야 할 양이 많을수록, 그리고 처리하기 어려운 구조일수록 부담이 커집니다.
이 기준으로 보면 간에 부담을 주는 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 한 가지 성분이 고농도로 한꺼번에 들어올 때
- 간에서 대사되는 여러 물질이 동시에 경쟁할 때
- 무엇이 얼마나 들었는지 모르는 채로 오래 복용할 때
이 세 가지는 한약이냐 양약이냐 건강식품이냐를 가리지 않습니다.
그러면 무엇이 간에 부담이 되는가
약이 간에 부담을 줄 확률을 높이는 조건은 어느 정도 알려져 있습니다. 기름에 잘 녹는 성질을 가졌고, 하루 용량이 큰 성분일수록 그렇습니다. 간이 그런 성분을 처리하다가 반응성이 큰 중간 물질을 만들거나, 담즙을 내보내는 통로가 막히면서 문제가 생깁니다.
즉 간이 보는 것은 그 성분이 한약에서 왔는지 아닌지가 아니라, 무엇이 얼마나 들어왔는지입니다.
한약이 다른 이유
한약이 안전한 이유는 성분이 약해서가 아닙니다. 몸에 도달하는 방식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한약재의 유효 성분 상당수는 그대로 흡수되지 않습니다. 대장의 미생물이 먼저 손을 대어 활성 형태로 바꾸고, 그 뒤에야 흡수됩니다. 그렇게 혈액에 도달하는 농도는 현대 약물의 기준으로 보면 낮은 편입니다.
즉 한약은 몸에 무언가를 강하게 밀어 넣는 방식이 아니라, 몸이 조절할 수 있는 크기의 신호를 건네는 방식에 가깝습니다.
다만 이것을 "그러니 안전하다"로 바로 잇지는 않겠습니다. 미생물이 손을 대면 원래보다 작용이 강해지는 성분도 있고, 간이 처리하다가 오히려 부담이 되는 성분도 있습니다. 그래서 다음 이야기가 필요합니다.
그렇다면 한약은 무조건 안전한가
아닙니다. 이 대목에서 저는 분명히 선을 긋습니다.
어떤 약재는 실제로 간에 부담이 될 수 있습니다. 특정 약재를 오래, 많이 쓰면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보고가 있고, 저는 그것을 알고 처방합니다. 또 이미 간 기능이 떨어져 있는 분, 간 질환 치료를 받고 계신 분은 처방 자체를 다르게 설계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무엇이 얼마나 들었는지 아무도 확인하지 않은 채 오래 드시는 것은 주의해야 합니다. 이것은 한약의 문제가 아니라 관리의 문제입니다.
그래서 제가 하는 일
저는 처방 전에 이렇게 확인합니다.
- 요즘 챙겨 드시는 것을 알려 주십시오 — 병원 약이 먼저지만 그것만은 아닙니다. 간에서 자리를 두고 겹치는 것이 있는지 미리 보면, 그만큼 피해 갈 수 있습니다.
- 간 수치를 확인해야 할 상황이면 검사를 권해 드립니다 — 필요하면 한약보다 검사가 먼저입니다.
- 오래 드셔야 하는 처방이면 중간에 점검합니다 — 괜찮을 것이라고 짐작하지 않습니다.
마지막으로 드리는 말씀
"한약은 간에 나쁘다"도, "한약은 간에 안전하다"도 둘 다 게으른 문장입니다. 무엇이, 얼마나, 누구에게 들어가는지를 묻지 않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 질문을 대신 해 드리는 사람이고 싶습니다. 걱정되신다면 그대로 물어봐 주십시오. 왜 괜찮은지, 혹은 왜 조심해야 하는지 이해하고 드실 자격이 있습니다.
참고한 자료
- 국내 한약 임상연구를 모아 본 결과 — 탕약 복용 전후 간 수치(AST·ALT 등)에 뚜렷한 변화가 없었다 — Journal of Ethnopharmacology, 2024
- 건강보험 자료 67만 명 분석 — 한약 처방은 약인성 간손상 위험 증가와 연관이 없었다 — Frontiers in Pharmacology, 2025
- 간이 약을 처리하는 경로와, 기름에 잘 녹고 용량이 큰 성분일수록 부담이 커지는 이유 — Gut, 2017
글: 허지영 원장 (경희대학교 한의학 병리학 박사 · 前 경희대 본초학 학술연구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