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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병일수록 작은 목표부터 — 무엇을 먼저 잡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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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 감수 허지영 대표원장

"이만큼 치료했으면 나아야 하는데" — 오래된 병 앞에서 조급해지면, 오히려 회복이 더뎌집니다.

난치성 질환을 진료할 때 저는 큰 목표 하나를 세우기보다, 작은 목표를 하나씩 잡습니다. 왜 그렇게 하는지, 그리고 그중에서 무엇을 먼저 집는지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왜 작은 목표부터인가요

오래된 병은 여러 층으로 되어 있습니다. 맨 위층의 힘든 증상 아래에, 그것을 떠받치는 다른 문제들이 쌓여 있습니다. 이 상태에서 "완전히 낫는 것"만을 목표로 삼으면, 조금 나아져도 체감이 안 되고 쉽게 지칩니다.

대신 지금 삶의 질을 크게 떨어뜨리는 한 가지 — 예를 들어 "밤에 통증으로 깨지 않는 것", "오전 시간을 버틸 수 있는 것" — 부터 목표로 삼으면, 작은 변화가 눈에 보이고 그것이 다음 단계의 힘이 됩니다.

여기서 하나 짚어 두는 게 좋겠습니다. 목표를 작게 잡는다고 몸이 더 빨리 낫는다는 뜻은 아닙니다. 재활 쪽에서 목표 설정을 살펴본 연구들도 주로 "내가 해낼 수 있다"는 감각과 삶의 질 쪽이 나아졌다고 봤습니다. 그것도 근거가 단단한 편은 아닙니다. 그러니 작은 목표는 약이 아니라 길을 잃지 않게 하는 이정표에 가깝습니다. 오래된 병에서는 그 이정표가 있고 없고가 꽤 큽니다.

왜 잠부터 잡는가

작은 목표를 고를 때 제가 자주 먼저 집는 것은 입니다. 여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잠과 통증은 서로를 끌고 다니는데, 그 힘이 한쪽으로 더 셉니다. 여러 해에 걸쳐 사람을 따라가며 관찰한 연구들을 보면, 잠이 나빠진 뒤에 통증이 심해지는 쪽이, 통증이 심해진 뒤에 잠이 나빠지는 쪽보다 더 뚜렷했습니다. 잠을 먼저 붙잡을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그다음은 대개 기력과 소화 — 회복에 쓸 재료가 들어오는 자리입니다. 오래 굳어 있던 문제는 보통 맨 나중에 움직입니다.

다만 이 차례는 제가 진료실에서 겪어 온 순서이지, 모든 몸이 지키는 법칙은 아닙니다. 사람마다 먼저 움직이는 자리가 다릅니다. 그래서 정해 놓고 밀어붙이기보다, 어느 쪽이 먼저 반응하는지 보고 다음 목표를 옮깁니다.

진행 상황을 함께 확인합니다

매 단계에서 무엇이 나아졌고 무엇이 그대로인지를 함께 확인합니다. 오래 아팠던 분일수록 "조금 나아진 것"을 스스로 알아차리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지난달에는 못 하던 일을 이번 달에 하고 계신데도, 본인은 모르고 계신 경우가 많습니다.

오래된 병 앞에서 제가 할 수 있는 말은 여기까지입니다. 지금 상태에서 무엇이 먼저 움직일 수 있는지를 함께 찾고, 그 작은 목표를 하나씩 밟아 가는 것. 그 길을 함께 걷는 것이 제 역할입니다.

참고한 자료


글: 허지영 원장 (경희대학교 한의학 병리학 박사 · 前 경희대 본초학 학술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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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지영 대표원장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병리학(질병의 기전) 석사·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이후 같은 대학 본초학 교실에서 학술연구교수로 약물을 연구했습니다. 질병과 약물을 양쪽에서 연구한 이력이 진료의 바탕입니다 — "이 약이 왜 이 병에 듣는가"를 병리와 약리 양쪽 언어로 설명합니다. 자율신경과 만성·난치질환, 체형·구조의 문제를 현대과학의 언어로 설명하고, 원인에 맞는 치료를 제안합니다. 한의사를 대상으로 처방과 임상 강의를 10년 이상 해 왔으며, 저서 《한의사들이 읽어주는 한의학》 공동 저자입니다. 이 책은 2018년 하반기 세종도서 교양부문에 선정되었습니다(기술과학 분야 15종에 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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