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약이 도울 수 있는 것과, 없는 것
"한약으로 나을 수 있나요?"
앉으시자마자 나오는 말입니다. 그리고 여기에 "네"나 "아니오"로 답하면, 어느 쪽으로 답해도 거짓말이 됩니다.
그래서 저는 어디까지 손이 닿는지를 말씀드립니다.
한약은 조절을 손봅니다
한약이 하는 일을 한 줄로 줄이면 이겁니다. 몸이 스스로 고칠 조건을 만드는 것. (한약은 무엇을 하는가)
그러니 손이 닿는 자리와 덜 닿는 자리가 갈립니다.
조절이 흔들려서 생긴 것 — 여기는 손이 닿습니다. 순환, 소화, 잠, 기력. 그리고 그것들이 흔들려서 파생된 증상들. 검사는 정상인데 힘드신 것들이 대개 여기 있습니다. (검사는 정상입니다라는 말의 정확한 뜻)
구조가 이미 상한 것 — 여기는 덜 닿습니다. 조절을 아무리 손봐도 없어진 것이 돌아오지는 않습니다. 다만 그 구조를 둘러싼 환경은 손볼 수 있고, 그것만으로도 사는 게 달라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니 이런 순서입니다
먼저 가려야 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증상이 갑자기 심해지거나, 없던 것이 새로 생기거나, 체중이 빠지거나 하면 — 그때는 검사가 먼저입니다. 한약을 드시며 시간을 보내면 안 되는 자리입니다.
여기서 저는 자주 이렇게 말씀드립니다. "이건 제 자리가 아닙니다." 그 말을 하는 것도 제 일입니다.
검사가 끝났고 이름이 붙었다면, 그다음에 남는 질문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 몸을 어떻게 하느냐."
병명이 붙었다고 그 사람의 잠과 소화와 기력이 저절로 돌아오지는 않습니다. 거기가 제 자리입니다.
"낫는다"는 말을 나눠 쓰는 이유
오래된 병에서 "낫는다"는 말은 한 가지가 아닙니다.
없던 일로 되돌리는 것, 진행을 늦추는 것, 같은 병을 가지고도 덜 힘들게 사는 것 — 전부 다른 이야기인데 한 낱말을 씁니다. 그래서 서로 다른 것을 기대하며 이야기하다 어긋납니다.
그래서 저는 처음에 어느 쪽을 말하는지부터 맞춥니다. 여기서 어긋나면 몇 달을 헛돕니다.
한약으로 다 되지는 않습니다. 그렇다고 이름이 붙은 병 앞에서 할 게 없는 것도 아닙니다.
어디까지 손이 닿는지를 먼저 그리고, 거기서 시작하면 됩니다.
글: 허지영 원장 (경희대학교 한의학 병리학 박사 · 前 경희대 본초학 학술연구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