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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는 정상인데 아프다면 — 구조 말고 조직의 환경을 봅니다

경희미르애한의원 광진점 대표원장 허지영 프로필 사진
의료 감수 허지영 대표원장

검사는 정상인데 계속 아프다.

진료실에서 이 말을 듣지 않는 날이 거의 없습니다. 사진에는 아무 이상이 없고 피 검사도 깨끗한데, 환자분은 분명히 아픕니다.

이럴 때 저는 보는 자리를 옮깁니다. 뼈가 어디 있는지가 아니라, 그 옆의 조직이 지금 어떤 상태인지를 봅니다.

구조는 정상인데, 조직은 달라져 있습니다

이건 느낌이 아니라 측정된 이야기입니다.

만성 요통을 겪는 분 107명의 허리를 초음파로 본 연구가 있습니다. 근육 옆의 결합조직이 두께와 밀도에서 약 25% 높게 나타났습니다. 흥미롭게도 그 변화는 피부 아래 지방층이 아니라 근육 바로 옆에 몰려 있었습니다.

같은 연구진이 121명에게서 한 번 더 확인했습니다. 이번에는 층과 층이 미끄러지는 정도를 봤습니다. 아픈 쪽은 그 미끄러짐이 약 20% 줄어 있었습니다.

영상 검사가 정상인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뼈는 멀쩡합니다. 달라진 것은 그 옆에서 미끄러지고 늘어나야 할 조직이고, 지금의 영상은 그걸 잘 보여주지 않습니다.

다만 이 연구들이 보여준 것은 함께 나타난다는 사실이지 어느 쪽이 먼저인지가 아닙니다. 굳어서 아픈 것인지 아파서 덜 움직이다 굳은 것인지는, 논문을 쓴 연구자들도 열어 두고 있습니다.

아픈 곳과 원인인 곳이 다를 수 있습니다

이것도 사람에게서 확인한 이야기입니다.

건강한 분 72명의 정강이 근육에 산성 용액을 넣어 본 연구가 있습니다. 넣은 자리가 아픈 것은 당연합니다. 그런데 떨어져 있는 발목에서도 통증이 나타났습니다. 여성의 80%, 남성의 40%에서였습니다.

비유가 아니라 실험으로 만들어 낸 현상입니다. 그래서 저는 아프다고 하시는 자리만 보지 않습니다. 종아리가 아파 오셨는데 종아리에 답이 없는 경우가 있고, 그럴 때는 위쪽을 거슬러 올라갑니다.

어느 자리에서 어느 자리로 간다는 특정한 경로까지 근거를 대며 말씀드릴 수는 없습니다. 떨어진 곳에서 통증이 생길 수 있다는 데까지가 확인된 부분이고, 그 앞은 손으로 찾는 영역입니다.

가만히 두면 뻣뻣해집니다

여기서 요변성(thixotropy)이 등장합니다. 제가 오래 붙잡고 있는 개념입니다.

어떤 물질은 가만히 두면 굳어 있다가 흔들면 물러집니다. 케첩이 그렇습니다. 병 속에서는 굳어 있지만 흔들면 흐릅니다.

근육이 실제로 그렇습니다. 힘을 빼고 이완된 근육도 가만히 있으면 저항이 생깁니다. 움직이면 줄고, 다시 쉬면 늘어납니다.

기전도 밝혀져 있습니다. 이완된 근육 안에서도 액틴과 미오신이 조금씩 자발적으로 붙어 있습니다. 힘을 내는 결합이 아니라 그냥 붙어 있는 결합인데, 이것이 뻣뻣함을 만듭니다. 움직이면 떨어지고, 멈추면 새 길이에서 다시 붙습니다.

사람에게 직접 확인한 연구도 있습니다. 12명의 손목에서 흔들거나 진동을 주자 근육의 초기 저항이 약 19~20% 떨어졌습니다. 다만 같은 연구에서 15초쯤 쉬니 그 뻣뻣함이 대부분 돌아왔습니다.

그래서 꺾지 않습니다 — 그리고 되돌아갑니다

굳은 것은 힘으로 이기지 않아도 됩니다. 원래 풀리는 길이 있으니 그 길로 가면 됩니다.

그런데 풀린 조직은 도로 되돌아갑니다. 흔들기를 멈춘 케첩이 다시 굳듯이요. 앞의 손목 연구에서도 15초쯤 쉬자 뻣뻣함이 대부분 돌아왔습니다.

이걸 감추고 "한 번 풀면 되돌아가지 않는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그 말을 할 필요도 없습니다. 되돌아간다는 것이야말로, 왜 한 번으로 끝나지 않는지, 왜 사이사이 움직이셔야 하는지를 설명해 주기 때문입니다. (교정이 자꾸 돌아온다면 — 유지 관리가 치료의 절반)

굳는 성질이 있는 조직은 계속 굳으려 합니다. 그래서 치료는 한 번의 사건이 아니라 방향을 바꾸는 일입니다.

한의학이 오래 말해 온 것

한의학은 오래전부터 이렇게 말해 왔습니다. 막힌 곳, 고인 곳, 열이 뭉친 곳.

저는 이 말들을 은유로만 읽지 않습니다.

옛 언어 제가 읽는 방식
막혔다 층과 층이 미끄러지지 않는 조직
고였다 흐름이 정체되어 주변과 조건이 달라진 조직
열이 뭉쳤다 염증이 이어지며 화학 환경이 달라진 조직

옛 사람들이 손끝으로 읽어낸 것에 지금 하나씩 이름이 붙는 중입니다. 그래서 저는 영상만 보지 않고 손을 얹습니다. 굳었는지 물렁한지, 미끄러지는지 붙어 있는지, 열이 있는지 오히려 차가운지 — 검사가 정상인 분에게 남아 있는 정보는 상당 부분 여기에 있습니다.

이 글에서 다룬 것은 몸의 여러 축 가운데 물리 축 하나입니다. 화학도, 대사도, 면역도 나란히 있고 어느 하나가 대장 노릇을 하지 않습니다. 통증으로 오시는 분들에게서 이 축이 먼저 기울어 있는 경우를 자주 볼 뿐입니다. (한약은 무엇을 하는가)

골절도 있고, 종양도 있고, 감염도 있습니다. 그런 신호가 보이면 검사를 먼저 권해 드립니다.


보이지 않는다고 없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언어로 읽어야 할 뿐이고, 지금은 그 언어에 숫자가 붙기 시작했습니다.


참고한 자료

글: 허지영 원장 (경희대학교 한의학 병리학 박사 · 前 경희대 본초학 학술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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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희미르애한의원 광진점 대표원장 허지영 프로필 사진

허지영 대표원장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병리학(질병의 기전) 석사·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이후 같은 대학 본초학 교실에서 학술연구교수로 약물을 연구했습니다. 질병과 약물을 양쪽에서 연구한 이력이 진료의 바탕입니다 — "이 약이 왜 이 병에 듣는가"를 병리와 약리 양쪽 언어로 설명합니다. 자율신경과 만성·난치질환, 체형·구조의 문제를 현대과학의 언어로 설명하고, 원인에 맞는 치료를 제안합니다. 한의사를 대상으로 처방과 임상 강의를 10년 이상 해 왔으며, 저서 《한의사들이 읽어주는 한의학》 공동 저자입니다. 이 책은 2018년 하반기 세종도서 교양부문에 선정되었습니다(기술과학 분야 15종에 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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