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칼럼 난치질환 클리닉
블로그 2026년 7월 9일

면역력은 장에서 결정됩니다

경희미르애한의원 광진점 대표원장 허지영 프로필 사진
의료 감수 허지영 대표원장

"면역력이 떨어져서 그런 것 같아요."

자주 듣는 말이고, 저도 자주 쓰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 말은 조금 이상합니다. 면역력이 떨어졌다면 무엇이 얼마나 떨어진 것일까요. 올리려면 무엇을 올려야 할까요.

저는 이 질문에 답하려면 먼저 면역의 기준선이 어디서 정해지는가를 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면역세포는 어디에 가장 많이 있는가

답은 의외입니다. 혈액도, 림프절도, 비장도 아닙니다.

몸에서 면역세포가 가장 많이 모여 있는 곳은 장입니다.

이유는 단순합니다. 장은 몸의 안쪽이면서 동시에 바깥과 맞닿은 곳입니다. 우리가 먹는 모든 것, 그리고 그와 함께 들어오는 수많은 세균과 낯선 물질들이 이 얇은 막 하나를 사이에 두고 몸과 마주합니다.

하루 종일, 평생, 쉬지 않고 판단해야 합니다. 이것은 받아들일 것인가, 막을 것인가.

몸이 면역세포를 가장 많이 배치한 곳이 장인 것은 그래서 당연합니다.

장은 매일 면역을 훈련시킵니다

장에서 일어나는 일은 싸움만이 아닙니다. 훨씬 흥미로운 일이 일어납니다.

장 속 세균들은 세포벽 조각 같은 물질을 끊임없이 흘립니다. 그중 일부는 아주 작은 양이 장벽을 넘어 몸 안으로 들어옵니다. 손상된 세포에서 나오는 신호 물질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작은 신호들이 몸의 면역계에 "지금 바깥은 이런 상태다"라고 계속 알려 줍니다.

즉 장은 면역계의 기준선을 매일 새로 맞추고 있습니다. 얼마나 예민하게 반응할지, 얼마나 참을지를 여기서 배웁니다.

그래서 무엇이 달라지는가

이 관점에 서면, 무관해 보이던 것들이 이어집니다.

장이 새기 시작하면 — 원래 넘어오지 말아야 할 양의 물질이 넘어옵니다. 면역계는 늘 경계 상태가 되고, 몸 곳곳에 은근한 염증이 남습니다. 어디가 아픈지 딱 짚을 수 없는데 계속 피곤한 상태가 이것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장내 미생물의 구성이 흐트러지면 — 훈련의 내용이 달라집니다. 참아야 할 것에 반응하고, 반응해야 할 것을 놓칩니다. 알레르기와 자가면역이 늘어난 배경으로 이 지점이 자주 이야기됩니다.

장이 잘 움직이지 않으면 — 고인 곳에서 세균의 구성이 바뀌고, 점막은 자극받습니다.

한약도 여기서 갈립니다

앞서 다른 글에서 말씀드린 적이 있습니다. 한약의 유효 성분 상당수는 그대로 흡수되지 않고, 대장의 미생물이 손을 대어 활성 형태로 바꾸어 준 뒤에야 흡수됩니다.

이 두 가지 사실을 겹쳐 놓으면 하나의 그림이 됩니다.

장은 약이 깨어나는 곳이면서, 동시에 면역의 기준선이 정해지는 곳입니다.

장이 나쁘면 좋은 약도 힘을 내지 못하고, 면역의 기준선도 흐트러져 있습니다. 그래서 오래된 병일수록 저는 장을 먼저 봅니다. 돌아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지름길입니다.

그럼 유산균을 먹으면 되나요

자주 받는 질문입니다. 도움이 될 수 있지만, 그것만으로 충분하다고 말씀드리지 않습니다.

장내 미생물은 몇 종을 넣어 준다고 바뀌는 단순한 생태계가 아닙니다. 무엇을 넣느냐보다 어떤 환경을 만들어 주느냐가 더 중요합니다.

  • 장이 잘 움직이는가 — 고이면 구성이 바뀝니다
  • 배 안의 압력이 적절한가 — 압력이 높으면 장은 덜 움직입니다
  • 호흡이 배까지 닿는가 — 횡격막의 오르내림이 장을 밀어 줍니다
  • 자율신경이 안정되어 있는가 — 긴장 상태에서 장은 일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장을 다룰 때 균을 넣는 일보다, 장이 움직이고 회복할 조건을 만드는 데 집중합니다.

긴장하면 배가 아픈 이유

장과 자율신경은 촘촘히 연결되어 있습니다. 긴장하면 배가 아프고, 장이 나쁘면 잠이 얕아지는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몸이 위험하다고 판단하면, 소화는 뒤로 미룹니다. 도망쳐야 할 때 밥을 소화시킬 여유는 없으니까요. 그런데 이 상태가 만성이 되면, 장은 늘 일을 미룬 채로 있게 됩니다.

면역의 기준선을 정하는 곳이, 늘 일을 미룬 상태로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율신경이 흔들리는 분들이 소화도 나쁘고 잔병치레도 잦은 것을, 저는 세 가지 다른 병으로 보지 않습니다. 한 자리에서 시작된 하나의 흐름으로 봅니다.

마지막으로

장이 면역에서 큰 역할을 한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다만 "면역력"이라는 말을 장의 상태로 환원해 설명하는 방식은 아직 단순화의 위험이 있고, 저는 그것을 압니다. 면역은 장 하나로 설명되지 않습니다. 유전, 나이, 수면, 스트레스가 모두 관여합니다.

그리고 면역이 걱정되어 오신 분께, 검사가 먼저 필요한 경우에는 검사를 권해 드립니다. 자가면역질환이나 면역결핍이 의심되면 그쪽 진료가 우선입니다.

다만 "면역력을 올려 주는 약"을 찾아다니시기 전에, 그 면역이 어디서 매일 조율되고 있는지를 한 번쯤 보셨으면 합니다. 대개 답은 몸속 깊은 어딘가가 아니라, 오늘 아침의 소화와 배변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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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희미르애한의원 광진점 대표원장 허지영 프로필 사진

허지영 대표원장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병리학(질병의 기전) 석사·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이후 같은 대학 본초학 교실에서 학술연구교수로 약물을 연구했습니다. 질병과 약물을 양쪽에서 연구한 이력이 진료의 바탕입니다 — "이 약이 왜 이 병에 듣는가"를 병리와 약리 양쪽 언어로 설명합니다. 자율신경과 만성·난치질환, 체형·구조의 문제를 현대과학의 언어로 설명하고, 원인에 맞는 치료를 제안합니다. 한의사를 대상으로 처방과 임상 강의를 10년 이상 해 왔으며, 저서 《한의사들이 읽어주는 한의학》 공동 저자입니다. 이 책은 2018년 하반기 세종도서 교양부문에 선정되었습니다(기술과학 분야 15종에 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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