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칼럼 만성통증 클리닉
블로그 2026년 6월 5일

먹은 약이 어떻게 아픈 곳을 찾아갈까

경희미르애한의원 광진점 대표원장 허지영 프로필 사진
의료 감수 허지영 대표원장

"입으로 먹은 약이 어떻게 아픈 데를 알고 찾아가나요?"

진료실에서 자주 받는 질문이고, 좋은 질문입니다. 약은 위장으로 들어가 혈액을 타고 온몸을 돕니다. 발끝에도 가고 머리끝에도 갑니다. 그런데 왜 하필 아픈 곳에서 작용할까요.

저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약이 아픈 곳을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아픈 곳이 약을 붙잡는 것입니다.

아픈 곳은 주변과 화학적으로 다릅니다

염증이 있는 조직은 옆의 멀쩡한 조직과 완전히 다른 환경입니다. 겉으로는 그냥 "아픈 데"지만, 안에서는 세 가지가 달라져 있습니다.

첫째, 산성으로 기울어 있습니다. 염증이 생기면 그 부위의 세포는 산소가 부족한 상태에서 에너지를 만들게 되고, 그 과정에서 산성 물질이 쌓입니다. 주변보다 pH가 낮아집니다.

둘째, 압력이 높아져 있습니다. 부어오르고, 체액이 고이고, 조직이 팽팽해집니다.

셋째, 혈관이 헐거워져 있습니다. 염증 부위의 혈관은 벽이 느슨해져서 물질이 잘 새어 나옵니다. 면역세포를 그곳으로 불러들이기 위한 몸의 장치입니다.

그래서 무슨 일이 생기는가

혈액을 도는 약물 성분은 대개 혼자 다니지 않습니다. 다른 물질과 결합한 상태로 이동하다가, 조건이 맞는 곳에서 결합이 풀립니다.

그 조건이 바로 위의 세 가지입니다. 산성으로 기운 곳, 압력이 달라진 곳, 혈관이 헐거운 곳. 이런 자리에서 성분은 빠져나오고, 풀리고, 머뭅니다.

약 성분이 온몸을 돌다가
        ↓
pH가 다르고 · 압력이 높고 · 혈관이 헐거운 자리를 만나면
        ↓
결합이 풀리고 조직으로 새어 나와 머문다
        ↓
그 자리에서 작용이 강해진다

성분은 온몸에 다 갑니다. 다만 압도적으로 작용하는 자리가 따로 생기는 것입니다.

이것이 제 진료를 바꿉니다

이 관점을 받아들이면 치료의 목표가 달라집니다.

흔한 접근은 "어떤 성분이 통증에 좋은가"를 묻습니다. 저는 한 걸음 앞에서 묻습니다. "이 사람의 아픈 조직은 지금 어떤 환경에 놓여 있는가."

  • 압력이 높아 순환이 막힌 곳인가
  • 체액이 고여 빠지지 않는 곳인가
  • 오래 굳어 물질이 드나들지 못하는 곳인가
  • 은근한 염증이 식지 않고 남은 곳인가

같은 허리 통증이라도 이 답이 다르면 처방이 달라집니다. 어떤 분에게는 고인 것을 빼는 방향이, 어떤 분에게는 굳은 것을 무르게 하는 방향이, 어떤 분에게는 과열된 신경을 식히는 방향이 필요합니다.

약을 고르기 전에, 그 약이 도착할 자리의 조건을 먼저 봅니다.

한의학이 오래 해 온 이야기

한의학은 오래전부터 "막힌 곳", "고인 곳", "열이 뭉친 곳"이라는 말을 써 왔습니다. 저는 이 말들을 은유로만 읽지 않습니다.

  • 막힌 곳 — 순환과 물질 교환이 일어나지 않는 조직
  • 고인 곳 — 체액이 정체되어 압력이 높아진 조직
  • 열이 뭉친 곳 — 염증이 지속되며 화학적 환경이 달라진 조직

옛 사람들이 손끝과 눈으로 읽어낸 것을, 지금 우리는 압력과 산-염기와 혈관 투과성의 언어로 다시 말할 수 있습니다. 저는 이것이 한의학을 낮추는 일이 아니라, 그 관찰이 무엇을 보고 있었는지 밝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왜 아픈 곳을 만져 보는가

제가 진료할 때 아픈 곳뿐 아니라 그 주변을 넓게 만져 보는 이유도 여기 있습니다.

굳었는지 물렁한지, 눌렀을 때 압력이 어디로 밀리는지, 열이 있는지 오히려 차가운지. 이것들은 그 조직이 놓인 환경을 알려 주는 신호입니다. 영상 검사가 뼈와 구조를 보여 준다면, 손은 환경을 읽습니다. 그래서 검사가 정상인데도 아픈 경우, 손으로 읽어야 할 것이 남아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이 설명 중 어떤 부분은 연구로 잘 뒷받침되고, 어떤 부분은 제가 임상과 공부를 통해 세운 관점입니다. 저는 그 둘을 구분해서 말씀드리려 합니다.

다만 "약이 어떻게 아픈 데를 찾아가나요"라는 질문에 "원래 그렇게 됩니다"라고 답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몸에서 벌어지는 일에는 이유가 있고, 그 이유를 아시는 편이 치료를 함께 끌고 가는 데 훨씬 도움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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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희미르애한의원 광진점 대표원장 허지영 프로필 사진

허지영 대표원장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병리학(질병의 기전) 석사·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이후 같은 대학 본초학 교실에서 학술연구교수로 약물을 연구했습니다. 질병과 약물을 양쪽에서 연구한 이력이 진료의 바탕입니다 — "이 약이 왜 이 병에 듣는가"를 병리와 약리 양쪽 언어로 설명합니다. 자율신경과 만성·난치질환, 체형·구조의 문제를 현대과학의 언어로 설명하고, 원인에 맞는 치료를 제안합니다. 한의사를 대상으로 처방과 임상 강의를 10년 이상 해 왔으며, 저서 《한의사들이 읽어주는 한의학》 공동 저자입니다. 이 책은 2018년 하반기 세종도서 교양부문에 선정되었습니다(기술과학 분야 15종에 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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