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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 2026년 5월 2일

센 약이 좋은 약일까

경희미르애한의원 광진점 대표원장 허지영 프로필 사진
의료 감수 허지영 대표원장

"좀 센 걸로 지어 주세요."

오래 아프셨던 분들께 종종 듣는 말입니다. 그동안 여러 곳을 다니며 별 차도가 없었으니, 이번에는 확실한 것을 원하시는 마음. 저는 그 마음을 잘 압니다.

다만 저는 이렇게 되묻습니다. "세다는 것이 무슨 뜻일까요."

세다는 말에는 두 가지가 섞여 있습니다

하나는 성분의 농도가 높다는 뜻입니다. 다른 하나는 몸의 반응이 크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이 둘을 자연스럽게 같은 것으로 여깁니다. 많이 넣으면 많이 반응할 것이라고요.

그런데 몸은 그렇게 단순한 장치가 아닙니다.

많이 넣으면 어떻게 되는가

몸에는 조절 장치가 있습니다. 무언가가 밀려들면 몸은 그것을 처리하고, 균형을 되찾으려 합니다.

고농도로 한 가지 물질을 밀어 넣으면, 몸은 협상할 여지 없이 그것을 처리해야 합니다. 처리하는 기관에 부담이 쌓이고, 조절 장치는 눌립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몸은 그 자극에 적응해 반응이 무뎌집니다.

제가 임상에서 자주 만나는 예가 있습니다. 헬스를 하며 아미노산이나 산화질소 계열 보충제를 다량으로 드시던 분들이 간 수치 문제로 오시는 경우입니다. 산화질소는 혈관을 넓혀 주지만, 그 자체가 강력한 산화 물질입니다. 넣는 만큼 작용하고, 넣는 만큼 부담이 됩니다.

세게 밀어붙이는 것은 몸의 조절 장치를 이기려는 방식입니다. 급할 때는 그것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오래된 병에서는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오래된 병에는 다른 원리가 필요합니다

오래 아픈 몸에서 무너져 있는 것은 대개 어떤 부품이 아니라 조절하는 능력 그 자체입니다. 잠을 조절하고, 소화를 조절하고, 통증을 조절하고, 염증을 껐다 켰다 하는 능력입니다.

여기서 필요한 것은 밀어붙이기가 아니라 다시 켜기입니다.

의학에는 이런 원리를 보여 주는 좋은 예가 있습니다.

부갑상선 호르몬은 원래 뼈를 녹이는 호르몬입니다. 그런데 소량을 간헐적으로 주면 오히려 골량이 늘어납니다. 계속 많이 주면 뼈가 녹고, 조금씩 끊어서 주면 뼈가 자랍니다. 같은 물질이 양과 방식에 따라 정반대로 작동합니다.

운동도 같습니다. 근육에 적당한 부담을 주면 근육은 손상되고, 그 손상이 회복 반응을 불러 더 강해집니다. 부담이 지나치면 다치고, 없으면 줄어듭니다.

낮은 강도의 자극이 오히려 몸의 조절 능력을 끌어올리는 이 현상을 호메시스(hormesis)라고 부릅니다.

한약을 저는 이렇게 이해합니다

한약재의 유효 성분이 혈액에 남는 농도는 현대 약물의 기준으로 보면 놀라울 만큼 낮습니다. 게다가 상당수는 장내 미생물의 대사를 거쳐야 비로소 활성화됩니다.

오랫동안 이 낮은 농도는 한약의 약점처럼 여겨졌습니다. 저는 반대로 봅니다.

몸이 조절할 수 있는 크기의 신호이기 때문에, 몸을 대신하지 않고 몸을 깨우는 쪽으로 작동합니다. 무언가를 강제로 시키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를 정리해야 한다고 알려 주는 데 가깝습니다.

오래된 병에서 필요한 것이 정확히 그것입니다.

그렇다고 약하게만 쓰지는 않습니다

오해를 남기지 않겠습니다. 필요할 때는 강하게 씁니다.

급성 염증이 번지고 있거나, 통증이 잠을 못 잘 만큼 심하거나, 체액이 급격히 고여 압력이 높아진 상황에서는 몸의 조절을 기다릴 여유가 없습니다. 그럴 때는 먼저 끄고, 먼저 빼야 합니다.

그리고 그런 상황에서 한방 치료보다 검사나 양방 처치가 먼저 필요하다면, 저는 그렇게 말씀드립니다.

강약의 문제가 아니라 순서의 문제입니다. 지금 이 사람의 몸에서 눌러야 할 것이 있는지, 깨워야 할 것이 있는지를 판단하는 일이 처방보다 앞에 옵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씀드립니다

"센 걸로 지어 주세요" 하실 때, 저는 이렇게 답합니다.

"확실히 듣게 해 드리겠습니다. 다만 세게 밀어붙이는 것이 확실한 방법인지는 함께 보시죠."

오래된 병일수록 회복은 직선으로 오지 않습니다. 좋아졌다 나빠졌다를 반복하며 물결처럼 옵니다. 그 물결의 진폭이 서서히 줄어드는 것이 회복입니다. 한 번에 눌러 없애려 하면, 그 물결 자체를 만들어 내는 몸의 힘까지 함께 눌리기 쉽습니다.

마지막으로

호메시스와 한약을 직접 연결하는 연구는 아직 충분히 쌓이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제가 임상과 공부를 통해 세운 관점이며, 확립된 사실과 제 해석을 저는 구분해서 말씀드립니다.

다만 오래 아픈 몸에 필요한 것이 더 센 약이 아니라 다시 조절할 힘이라는 것 — 이것만큼은 진료실에서 반복해 확인해 온 일입니다.

급하게 낫고 싶은 마음을, 오래 낫는 길로 바꾸는 일. 그 설명을 드리는 것이 제 진료의 출발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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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지영 대표원장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병리학(질병의 기전) 석사·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이후 같은 대학 본초학 교실에서 학술연구교수로 약물을 연구했습니다. 질병과 약물을 양쪽에서 연구한 이력이 진료의 바탕입니다 — "이 약이 왜 이 병에 듣는가"를 병리와 약리 양쪽 언어로 설명합니다. 자율신경과 만성·난치질환, 체형·구조의 문제를 현대과학의 언어로 설명하고, 원인에 맞는 치료를 제안합니다. 한의사를 대상으로 처방과 임상 강의를 10년 이상 해 왔으며, 저서 《한의사들이 읽어주는 한의학》 공동 저자입니다. 이 책은 2018년 하반기 세종도서 교양부문에 선정되었습니다(기술과학 분야 15종에 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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