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아플수록, 나아진 것을 못 알아봅니다
"지난달보다 좀 어떠세요?"
이 질문에 대개 "똑같아요"라고 답하십니다. 그런데 이야기를 더 들어 보면 지난달에는 못 하시던 걸 이번 달에 하고 계십니다. 본인만 모르십니다.
이게 흔합니다. 그리고 이유가 있습니다.
나쁜 날이 더 크게 남습니다
기억은 좋은 날과 나쁜 날을 공평하게 저장하지 않습니다.
아팠던 날은 선명하게 남고, 괜찮았던 날은 그냥 지나갑니다. 괜찮은 날에는 몸을 잊고 사니까요 — 그게 괜찮다는 뜻이고, 그래서 기억에 안 남습니다.
그러니 한 달을 돌아보면 아팠던 날만 세어집니다. 스무 날이 괜찮고 열흘이 나빴어도, 떠오르는 건 그 열흘입니다. 그리고 "똑같다"고 느끼십니다.
마음이 약해서가 아닙니다. 기억이 원래 그렇게 생겼습니다.
게다가 기준선이 따라 올라갑니다
하나가 더 있습니다.
통증이 8이었다가 5가 되면 처음엔 살 것 같습니다. 그런데 몇 주 지나면 5가 새 기준이 됩니다. 그러면 5가 힘든 상태가 됩니다. 8이었던 걸 잊어버리는 겁니다.
몸이 적응한 겁니다. 좋은 일인데, 나아진 걸 못 느끼게 만듭니다.
나아질수록 나아진 걸 모르게 되는 얄궂은 구조입니다.
그래서 적습니다
그래서 진료 때마다 나아진 부분을 함께 확인합니다. 위로하려는 게 아니라 기억이 못 하는 일을 대신 하는 것입니다.
대단한 기록이 아닙니다. 지난번에 "밤에 두 번 깬다"고 하셨는데 오늘 "한 번"이라고 하시면, 그걸 짚어 드립니다. 본인은 그 사이의 변화를 못 느끼십니다. 날마다 조금씩 달라진 것은 원래 안 느껴집니다.
그리고 나빴던 날만 세지 말고 괜찮았던 날도 세시라고 말씀드립니다. 한 달에 며칠이었는지. 그 숫자가 늘고 있으면 가고 있는 겁니다. (좋아졌다 나빠졌다 반복될 때)
지치는 건 당연합니다
오래 아프면 지칩니다. 그런데 그게 의지 문제가 아닌 게, 나아지는 게 안 보이는 상태로 계속 걷는 건 원래 못 하는 일입니다. 사람은 방향이 보여야 걷습니다.
그러니 지치지 마시라는 말씀보다 보이게 해 드리는 게 제 일입니다.
혼자 버티지 마시고, 나아진 것은 함께 세면 됩니다.
못 느끼셔도 달라지고 있을 수 있습니다. 그건 제가 옆에서 보고 있겠습니다.
글: 허지영 원장 (경희대학교 한의학 병리학 박사 · 前 경희대 본초학 학술연구교수)